[영화 애프터썬 리뷰] 결말 해석, 소피는 왜 오래된 여행 영상을 다시 바라봤을까
개인적으로 영화 <레옹>은 마틸다의 시선으로 보기를 추천한다.
마틸다의, 마틸다에 의한, 마틸다를 위한 영화.
처음 봤을 때는 킬러 레옹이 멋있었다.
검은 선글라스, 무표정한 얼굴, 혼자 우유를 마시고 화분을 돌보는 독특한 생활.
누가 봐도 레옹이 주인공처럼 보인다.
그런데 영화를 끝난 뒤에도 계속 생각나는 사람은 레옹이 아니라 마틸다다.
총을 들고 복수를 외치던 소녀
어른보다 더 어른 같았던 아이
그리고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었던 아이
레옹은 그런 마틸다의 이야기다.
많은 사람들이 <레옹>을 킬러 영화로 기억한다.
실제로 영화에는 총격전도 많고 액션 장면도 강렬하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시간이 조금 지나면 신기하게도 총소리는 잊혀진다.
대신 이런 장면들이 남는다.
복도에 혼자 앉아 있던 마틸다.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늘 혼자였던 마틸다.
학교보다 집이 더 무서웠던 마틸다.
그리고 가족이 죽은 뒤 울지도 못한 채 레옹의 문 앞에 서 있던 마틸다.
생각해보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장면은 액션 장면이 아니다.
레옹이 문을 열어주는 장면이다.
만약 그 문이 닫혔다면?
영화는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문 하나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꿔버린다.
영화를 보다 보면 마틸다가 유독 사랑이라는 감정에 집착하는 것처럼 보인다.
레옹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질투하고, 관심받고 싶어 하고 곁에 있고 싶어 한다.
처음 보면 조금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마틸다의 삶을 생각하면 이해가 된다.
그 아이는 사랑받아본 적이 거의 없었고 가족이 있었지만 가족 같지 않았다.
집이 있었지만 집 같지 않았다.
그래서 레옹이 처음으로 자신을 보호해주는 사람이 되었을 때,
마틸다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그녀가 원했던 건
누군가의 따뜻한 시선,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버려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원했을 것이다.
어쩌면 영화 내내 마틸다가 찾고 있었던 건 사랑이 아니라 안식처였는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건 영화 속에서 가장 크게 변하는 사람은 레옹이 아니라 마틸다라는 점이다.
처음의 마틸다는 복수밖에 모르고 분노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이 자신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레옹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조금씩 달라진다.
함께 식사를 하고 장을 보고 TV를 보고 아주 평범한 일상들..
그런데 마틸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처음이다.
누군가와 평범하게 하루를 보낸다는 것 그 자체가 낯선 경험이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복수 이야기는 점점 뒤로 밀려난다.
대신 한 아이가 사람을 믿게 되는 과정이 보인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 슬프게 다가왔다. 왜냐하면 이제 막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
그 행복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함께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계속 등장하는 것이 있다.
바로 화분이다.
레옹은 그 화분을 친구처럼 데리고 다닌다.
처음에는 그냥 독특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가 되면 의미가 달라진다.
화분에는 뿌리가 없다. 흙에 심겨 있지 않다. 늘 들고 다녀야 한다.
레옹도 마찬가지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친구도 가족도 없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살아간다.
그래서 화분은 레옹 자신을 닮았다.
그런데 영화 마지막에 마틸다는 그 화분을 학교 마당에 심는다.
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는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영화 전체를 설명하는 장면이었다.
항상 떠돌고 뿌리 없던 삶
누구에게도 속하지 못했던 삶
그 모든 것이 비로소 한곳에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마틸다는 화분을 심으며 레옹을 떠나보낸 것이 아니라,
레옹이 남긴 시간을 자신의 삶 속에 심은 것이다.
이런 후기를 본 적이 있다.
"레옹을 보고 울었다는 사람은 많지만, 사실 울게 되는 건 레옹 때문이 아니라 마틸다 때문이다."
레옹은 자신의 삶을 선택했고 후회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틸다는 다르다.
이제 막 누군가를 믿게 되었는데, 이제 막 행복을 알게 되었는데, 다시 혼자가 된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총격전보다 훨씬 슬프다.
학교 운동장. 흙을 파는 손. 그리고 조용히 화분을 심는 마틸다.
그 순간만큼은 복수도 없고 분노도 없다.
그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한 아이만 남아 있다.
<레옹>은 킬러 영화로 시작하지만 결국 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로 기억된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남자를 만난 아이가,처음으로 사람을 믿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처음으로 사랑받는 기분을 알게 되는 이야기.
그래서 이 영화는 액션보다 감정이 오래 남는다.
총격전보다 침묵이 기억나고, 복수보다 화분이 기억난다.
무엇보다도 레옹보다 마틸다가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아마 그것이 이 영화가 30년 가까이 사랑받는 이유 아닐까.
내 평점
⭐ 4 / 5
액션 영화로 보기엔 너무 따뜻하고, 성장 영화로 보기엔 너무 잔인하다.
그래서 더 오래 기억된다
함께 보면 좋을 영화로 <8월의 크리스마스>를 추천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감정을 삼키는 방식이 닮아 있다. 떠나는 사람보다 남겨지는 사람이 더 아프다는 점에서도 연결된다.